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뉴질랜드 관계 (문단 편집) === 20세기 === 뉴질랜드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했다. 그리고 양국은 수교한 이후부터 교류와 협력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싱가포르가 일본제국군에게 점령당하자, 뉴질랜드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자국 방어를 더 이상 영국 측에만 맡길 수 없으며, 미국과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뉴질랜드군 미군, 호주군과 함께 [[일본제국군]]에 대항해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였다. 1951년부로 뉴질랜드는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가 함께 하는 상호방위조약인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인 참여하게 되었다. 미국의 우방국이 된 뉴질랜드는 6.25 전쟁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뉴질랜드 사이의 관계는 베트남전을 계기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는 미국과 함께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뉴질랜드 노동당 정권은 베트남에 파견된 뉴질랜드군을 70년대 초 철수시켰다. 또한 뉴질랜드 근처에서 프랑스가 핵 실험을 하자, 뉴질랜드 국민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가중되었고, 이는 미국의 핵추진함 입항 관련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1985년 2월 뉴질랜드 정부는 미국 핵추진함이 뉴질랜드에 입항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 사건으로 미국이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되었다. 이때 뉴질랜드는 미국의 “핵무기의 존재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책(NCND, Neither Confirm Nor Deny Policy)”에 대하여 핵함정 기항의 허용 여부에 관한 최종 결정권이 뉴질랜드에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1987년 6월 뉴질랜드 국회는 “뉴질랜드 비핵지대와 군축법1)”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뉴질랜드와 미국의 정치·군사 협력체제는 무너졌다. 또한 뉴질랜드는 사실상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 동맹으로부터 축출되었다. 물론 1990년에 집권한 국민당 정부의 대미 접근 정책에 따라 뉴질랜드와 미국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호전되었다. 그러나 태평양안전보장조약(ANZUS) 관계는 회복하지 못하였다. 1999년 이후 노동당 정부는 국민당 정부에 비해 대미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뉴질랜드와 미국 관계는 과거처럼 동맹 국가 관계로 회복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